좋은 서점이 되는 길

서점이야기 2009/08/06 10:27   by 글터
자전거 출근길 곳곳에 지난 폭우때 입은 상처의 흔적들이 보였습니다. 통행이 뜸한 국도길이라 복구의 손길이 거칠어 절개면을 가로질러 널브러진 토사가 군데군데 남아있습니다. 물은 그렇게 자기가 다녔던 길을 기억해내고 언젠가는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듯 합니다. 수천억을 들여 물길을 막고 돌려세운 인간의 욕심 많은 노력이 가소로운 것이겠지요.

예로부터 세상을 다스리는 일은 물에 빚대어 이야기 되어 왔습니다. 다스림을 뜻하는 治는 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물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방식을 말함이며, 이치를 뜻하는 法이란 물의 흐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멀리 노자의 말씀을 거론치 않더라도 절권도의 창시자이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소룡은 절권도의 깊은 뜻은 물에서 배우는 것이라 했습니다. 담기는 그릇에 따라 그 모양이 변하듯 상대에 따라 그때 그때 동작과 자세를 바꾸어야만 죽은 자세가 아닌 살아있는 절권도를 익힐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서점 운영에 있어서도 마친가지의 원칙과 방식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책은 저자나 출판사의 영향력이나 능력에 의해 또는 기타의 관련된 축척과 경험에 의해 그 학문적 깊이와 의미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런데 요사이 자본의 무지막지한 공세로 인해 이것이  왜곡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과도한 광고와 몇몇 출판사들이 보여주는 유명세를 탄 외국 저자를 확보하기 위한 치졸한 행태들을 보면서 저작물이 지닌 본래의 힘보다는 시장의 왜곡된 개입으로인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것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서점인들의 꼼꼼한 시각이 필요한 지점이지요. 건강한 서점인의 애정어린 눈길과 관심이 좋은 책들에게 자주 모아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좋은 서점에선 좋은 책들을 소홀히 다루지 말아야 합니다.

노자는 無爲之治라는 말로 참된 다스림의 원리를 밝혔습니다. 무위(無爲)라 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관심이 아니라, 그대로 내팽겨치는 무책임 함이 아니라 물흐르듯 자연스러움의 원리에 충실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달라는 것이겠지요.

눈 밝은 직원들이 많아져, 스스로 좋은 책을 잘 가려내는 안목이 높아지면 글터는 좋은 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책장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서점이야기 2006/10/27 20:15   by 글터
 


글터의 매장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지층과 1층을 합해 150평) 진열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적어도 300평 규모는 되어야 책의 분류를 자유롭게 하여 제 위치에 놓아 둘 엄두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 매장은 그 절반 밖에 되지 않으니 진열이 쉽지 않습니다.


평소에 책의 진열 방식을  관리자 중심에서 책을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전산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부터 대부분의 서점에서는 재고나 판매의 유무를 쉽게 파악하기 위해 관리자 중심의 진열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진열방식으로는 그 책의 객관적 위치를 잘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관리의 편의성은 이미 서점관리프로그램이 진화하면서 데이터 상으로 쉽게 보여 질 수 있습니다.


하나의 책은 학문적 유사성 또는 연관성 아래서 다른 책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 책을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책이 속해있는 분류의 다른 책들과 함께 진열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저는 이 말을 "서고 스스로가 자신을 표현하도록 하라"라고 합니다. 연관성 있는 다른 책들과 나란히 있을 때 속해있는 분류의 현재 학문적 지형도를 보여줄 수도 있고, 또 그 지형 속에서 자신의 객관적 위치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서점에 오는 독자들은 서점 관계자들 보다 자신의 관심 분야의 학문적 지형에 익숙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전의 진열 방식으로는 관심 분야의 지형 변화를 잘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다양한 주제를 정하고 그에 합당한 책들은 불러 모아 보여 주기에 적당한 서가를 새로 짜야 겠다는 생각에는 이런 고민과 욕심들이 숨어 있습니다.


평대 형식이 베스트셀러를 판매하는 데는 적합할 지 모르겠지만, 주제별 진열에는 오히려 산만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진열 공간이 적어서도 평대 진열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벽서가의 모양과 평대의 기능을 조금이라도 담당할 만한 서가를 고민 중입니다.


이번에 만든 서가는 아직 확정된 형태의 것은 아닙니다. 아직 목공기계를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각한 바를 서가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에도 서툴기에 벌써부터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이 눈에 띕니다. 우선은 만들기에 편한 쪽을 택해 실험 삼아 만든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래도 24mm 집성판재를 재단하고 루터기로 면치기를 하고, 조립하고 칠하고 하는 과정 내내 마음은 뿌듯했습니다. 업자에게 맡기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만, 과정에서 얻어지는 마음의 행복과 책과 서점에 대한 애정을 어찌 값어치로 셈하겠습니까.

서점이야기를 해야겠다. 조금은 과도한 기대가 아니냐는 핀잔을 듣더라도 서점과 서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듯이 위기상황이 분명하니 말이다.

지난 1일 고속철의 개통으로 우리는 또 다른 속도를 경험한다. 에둘러 돌아가는 일없이 직선으로 반듯하게 난 철길은 엄청난 속도로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른다. 흥분한 언론들은 앞을 다투어 "당일치기" 부산여행이 가능해지고, 권역별고 자르고 갈려진 철도 역사를 중심으론 사회. 경제. 문화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것이라고 떠들썩하다. 고속철 시대의 진입으로 인해 온 나라가 풍요로워지고,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목소리 요란스럽다. 

분명히 문명의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자연의 속도는 어떠한가. 제주도에서 시작한 우리나라 봄의 속도는 언제나 24-25km를 유지하고 있다. 시속 900여 미터인 이 속도는 아장아장 걷는 어린 아이의 걸음과 같은 속도라 한다. 하지만 이 느릿한 속도는 어느 것 하나 가르거나 편애하지 않고, 지난 겨울 잔설이 여전히 남은 계곡을 만나면 속도를 조금더 늦추기도 할 줄 안다. 아지랑이 뽀얗게 이는 들판을 건널 때면, 성큼 큰 걸음을 내딛기도 한다. 그 꼼꼼하고 촘촘한 걸음은 어느 한 곳 소홀히 거르지 않는 미덕을 지녔다. 그 다양한 모습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닿는 나무마다 그 모양새가 다르며, 스치는 꽃봉오리 마다 그 빛깔이 다르다. 겨우내 씨앗이 간직했던 생명의 비의와 만나면서 다양한 새 생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문화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 물질의 속도가 아니라. 생명의 속도이어야 한다. 단절과 가름의 속도가 아니라 관계와 조화의 속도이어야 한다. 편중과 독점의 속도가 아닌 나눔과 상생의 속도이어야 한다. 획일화 된 폭압이 아니라 다양한 공생이어야 한다.

도대체 무슨 서점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물론 이런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개인적인 다짐과 자세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이미 감당할 수 없는 문명의 속도를 제어하고 자연의 속도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의 생활과 실천이라고 믿기에 간디가 말한 "당신이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당신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말에 나는 주저 없이 동의한다. 그리고 문화의 생산자이자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향유자로서 개개인이 가져야 할 소중한 덕목의 하나로 나는 "자발적 소박함"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 "자발적 소박함"을 확산하는 일에 서점의 진정한 사회적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화가이며 작가이자 교육자인 존 레인은 자발적인 소박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편안하지만 호사스럽지 않은 삶, 소박하지만 쪼들리지 않는 생활, 단아하지만 따분하지 않는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길이다. 그것은 삶과 일, 일상과 예술 사이의 전문가적인 분할을 버리는 것이다.<언제니 소박하게>(샨티.2003)"

서점은 사람들에게 소비로부터 만족을 얻기보다는 독서를 통해 보다 여유 있는 생활태도를 유지함으로써 호사스럽지 않도록, 정신적 풍요를 통해서 소박하지만 쪼들리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적 접점을 제시함으로써 단아하지만 따분하지 않는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서점은 시류나 베스트셀러에 휩쓸리지 말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책들을 소개하고 전시하여야 한다. 이 다양함이야말로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요소이다. 또한 "삶과 일, 일상과 예술 사이의 전문가적인 분할을 버리기 위해" 다양한 문화적 행위들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 책은 저자의 손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전해주는 서점의 역할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으며, 해석하는 독자를 통해서 또한 새 생명이 주어진다. 따라서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문화적 행위는 문화주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며, 그 속에서 단절된 주체들의 관계는 회복되어질 수 있다.

책이 단순한 정보전달의 것이라면, 출판사와 서점의 역할은 극도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책은 그 이상의 것이다. 활자화된 텍스트 이외의 여백을 통해서 풍부한 창조적 상상력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서점의 자리가 그것을 제공하는 것일 때 서점은 단순한 경제활동의 단위가 아니라 생활문화의 일부이며, 건강한 사유 방식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다소 과도하게 자기합리화를 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보다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서 서점의 사회적 역할을 찾는다면 그리 허황된 것만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