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야기를 해야겠다. 조금은 과도한 기대가 아니냐는 핀잔을 듣더라도 서점과 서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듯이 위기상황이 분명하니 말이다.

지난 1일 고속철의 개통으로 우리는 또 다른 속도를 경험한다. 에둘러 돌아가는 일없이 직선으로 반듯하게 난 철길은 엄청난 속도로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른다. 흥분한 언론들은 앞을 다투어 "당일치기" 부산여행이 가능해지고, 권역별고 자르고 갈려진 철도 역사를 중심으론 사회. 경제. 문화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것이라고 떠들썩하다. 고속철 시대의 진입으로 인해 온 나라가 풍요로워지고,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목소리 요란스럽다. 

분명히 문명의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자연의 속도는 어떠한가. 제주도에서 시작한 우리나라 봄의 속도는 언제나 24-25km를 유지하고 있다. 시속 900여 미터인 이 속도는 아장아장 걷는 어린 아이의 걸음과 같은 속도라 한다. 하지만 이 느릿한 속도는 어느 것 하나 가르거나 편애하지 않고, 지난 겨울 잔설이 여전히 남은 계곡을 만나면 속도를 조금더 늦추기도 할 줄 안다. 아지랑이 뽀얗게 이는 들판을 건널 때면, 성큼 큰 걸음을 내딛기도 한다. 그 꼼꼼하고 촘촘한 걸음은 어느 한 곳 소홀히 거르지 않는 미덕을 지녔다. 그 다양한 모습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닿는 나무마다 그 모양새가 다르며, 스치는 꽃봉오리 마다 그 빛깔이 다르다. 겨우내 씨앗이 간직했던 생명의 비의와 만나면서 다양한 새 생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문화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 물질의 속도가 아니라. 생명의 속도이어야 한다. 단절과 가름의 속도가 아니라 관계와 조화의 속도이어야 한다. 편중과 독점의 속도가 아닌 나눔과 상생의 속도이어야 한다. 획일화 된 폭압이 아니라 다양한 공생이어야 한다.

도대체 무슨 서점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물론 이런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개인적인 다짐과 자세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이미 감당할 수 없는 문명의 속도를 제어하고 자연의 속도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의 생활과 실천이라고 믿기에 간디가 말한 "당신이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당신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말에 나는 주저 없이 동의한다. 그리고 문화의 생산자이자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향유자로서 개개인이 가져야 할 소중한 덕목의 하나로 나는 "자발적 소박함"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 "자발적 소박함"을 확산하는 일에 서점의 진정한 사회적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화가이며 작가이자 교육자인 존 레인은 자발적인 소박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편안하지만 호사스럽지 않은 삶, 소박하지만 쪼들리지 않는 생활, 단아하지만 따분하지 않는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길이다. 그것은 삶과 일, 일상과 예술 사이의 전문가적인 분할을 버리는 것이다.<언제니 소박하게>(샨티.2003)"

서점은 사람들에게 소비로부터 만족을 얻기보다는 독서를 통해 보다 여유 있는 생활태도를 유지함으로써 호사스럽지 않도록, 정신적 풍요를 통해서 소박하지만 쪼들리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적 접점을 제시함으로써 단아하지만 따분하지 않는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서점은 시류나 베스트셀러에 휩쓸리지 말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책들을 소개하고 전시하여야 한다. 이 다양함이야말로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요소이다. 또한 "삶과 일, 일상과 예술 사이의 전문가적인 분할을 버리기 위해" 다양한 문화적 행위들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 책은 저자의 손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전해주는 서점의 역할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으며, 해석하는 독자를 통해서 또한 새 생명이 주어진다. 따라서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문화적 행위는 문화주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며, 그 속에서 단절된 주체들의 관계는 회복되어질 수 있다.

책이 단순한 정보전달의 것이라면, 출판사와 서점의 역할은 극도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책은 그 이상의 것이다. 활자화된 텍스트 이외의 여백을 통해서 풍부한 창조적 상상력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서점의 자리가 그것을 제공하는 것일 때 서점은 단순한 경제활동의 단위가 아니라 생활문화의 일부이며, 건강한 사유 방식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다소 과도하게 자기합리화를 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보다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서 서점의 사회적 역할을 찾는다면 그리 허황된 것만은 아니리라.

고구마 캐러 갑니다.

글터문화행사안내 2006/10/24 09:35   by 글터
올 봄에 심어 놓은 고구마를 거둘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우리 모두의 게으름 탓에 고구마가 제대로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버젓한 행사로 하기엔 거둘 것이 너무없어 시간이 나는 데로 각자 거두어 가기도 했습니다.

지난주에 일부 고구마를 캐보니 그래도 거둘 것이 있기는 하기에 돌아오는 토요일(10월 28일)에는 시간이 되는 가족들이 모여 남은 고구마를 거둘까 합니다.

오후 햇살이 따스하게 퍼진 2시 경부터 고구마 밭에서 뵙겠습니다.

자세한 문의는 011-481-0201 이연호입니다.